[RWA가 쏘아올린 VC 펀딩난]벤처 생태계 키운 은행·증권·캐피탈 지갑 닫았다②민간 LP "벤처펀드 익스포져 낮췄거나 낮출 것"…기준 하향 필요 '한 목소리'
이기정 기자공개 2025-05-15 08:11:51
[편집자주]
RWA(위험가중자산) 강화로 국내 벤처캐피탈(VC)의 펀딩 혹한기가 길어지고 있다. 바젤3 규제 도입에 따라 국내 은행계 금융회사는 벤처펀드 출자에 '투기'에 준하는 400%의 RWA를 적용하게 됐다. 'RWA 관리'가 금융지주의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가 급격히 감소했고 벤처캐피탈은 펀드레이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벨이 RWA 가중치 변동으로 인해 벤처캐피탈이 겪게 된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제도 개선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5월 14일 07시1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사들은 벤처캐피탈(VC)업계 성장을 이끌어 온 중추다. 연기금, 공제회 기업, 공기업 등으로 출자자(LP) 저변이 확대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부터 핵심 LP 역할을 해왔다. 실제 운용자산(AUM) 1조원 이상의 대형 VC 대부분이 성장 과정에서 금융사로부터 출자를 받았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저금리 기조 속에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를 늘려가던 국내 은행계 금융사들은 2022년 하반기 글로벌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벤처 투자 익스포져를 낮추기 시작했다. 여기에 2023년 국제결제은행(BIS) 바젤3 규제기준이 도입으로 RWA 기준이 강화되면서 출자 규모는 더욱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그간 상대적으로 출자가 활발했던 은행과 증권사, 캐피탈사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VC들의 펀드레이징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주된 이유다. 벤처펀드 출자에 대한 위험자산가중(RWA) 비율을 낮춰 금융 계열 민간 LP가 부담 없이 자금을 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출자 활발했던 '큰 손'마저 출자 지속가능성 '물음표'
더벨이 운용자산(AUM)이 1조원이 넘는 국내 VC 12곳을 대상으로 민간 LP를 조사한 결과 12곳 모두 은행계 금융사로부터 출자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캐피탈사로부터 출자를 받은 경험이 있는 하우스가 9곳으로 가장 많았고 은행과 보험사 출자를 받은 곳은 각각 7곳이었다. 증권사와 카드사 출자 경험이 있는 곳은 각각 5곳, 1곳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벤처펀드 출자자 구성 가운데 금융사가 차지하는 비중(산업은행 제외)은 2023년 기준 약 19%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 실제 운용되고 있는 펀드들의 출자자 기준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비중은 각각 16.2%, 16.6%, 17.8%였다. 다만 해당 수치에는 RWA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금융사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이같이 벤처펀드 출자의 큰 축을 담당하던 금융계열 LP들은 2023년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바젤3 도입으로 모회사가 RWA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마냥 벤처 출자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RWA란 금융기업들의 자산을 위험도에 따라 평가해 산정하는 수치다. 자산의 성격별로 별도의 위험가중치를 적용해 계산한다. 금융회사의 벤처펀드 출자 자산에는 400%의 RWA 가중치가 적용된다. 100억원 출자를 한다고 가정할 경우 400억원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RWA가 높아지면 이를 분모로 활용하는 자본적성성 등 수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금융회사들은 RWA 관리를 위해 벤처펀드 출자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대적으로 영향이 큰 곳이 그간 벤처펀드 출자에 활발했던 은행과 캐피탈이다. 대부분은 출자 규모를 축소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 CET1(RWA 대비 보통주 자본 비율) 권고 기준이 상향되면서 2023년 대비 실제 벤처펀드 출자가 감소했다"며 "시중은행 계열 다른 캐피탈사들 역시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지난해 벤처펀드 출자가 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들도 올해부터 출자를 줄이기로 가닥을 잡았다. 대표적인 곳인 JB우리캐피탈이다. JB우리캐피탈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벤처펀드 출자는 시장 환경을 고려해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RWA 관리 영향으로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출자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자체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사정은 국책은행 계열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책은행 계열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아직은 RWA를 관리하면서 출자에 나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시장 변수가 많아질수록 RWA 관리를 위해 벤처펀드 출자를 줄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펀딩 한파 체감…절차 복잡해도 반드시 해결 필요
VC업계는 금융계 LP들의 출자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 한 중소형 VC 대표는 "출자를 받기 위해 찾아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RWA 관리를 위해 출자가 어렵다는 것이었다"라며 "기존에 벤처펀드 출자가 활발했던 금융 LP 대다수가 공통적인 반응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대형 하우스의 대표는 "기존에 출자를 받은 경험이 있는 하우스들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만 새롭게 출자를 받으려는 곳에게는 사실상 문이 닫혀 있다"며 "출자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다보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펀드 운용 트랙레코드가 있는 대형 VC에게 출자가 집중되는 것도 특징"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해 업계에서는 캐피탈사의 벤처펀드 출자가 사실상 막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펀딩에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의 출자 감소는 벤처투자 시장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벤처펀드 출자에 대한 RWA 비율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한 대형사 대표는 "RWA 비율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고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만 벤처투자, 나아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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