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11월 04일 09: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통상 리스크관리자는 고집불통으로 통한다. 영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원리원칙을 앞세우기 일쑤다. 우리은행은 최근 현장중심 리스크관리 행보를 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박기석 부행장(사진)은 "요즘 우리은행 리스크관리 부서는 영업현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듣느라 출장이 잦다"며 "영업현장에 귀 기울이다 보면 지켜야 할 원칙은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보다 유연하게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은행 고객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률적이고 포괄적인 규제 일변도의 리스크관리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따뜻한 리스크관리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목표다. 이는 정부의 규제 혁파를 통한 경제 살리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대출자의 부도위험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국내 경기도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를 맞은 데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이다 보니 해외 경기의 장기 침체가 악재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할 가계의 지출여력은 갈수록 줄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 은퇴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청년실업도 풀릴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박 부행장은 "이렇게 경제에 활력이 부족할 때 자금을 제공하는 은행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며 "우리은행의 최근 이러한 현장중심의 리스크관리가 은행의 신용공여 기능을 활성화해 경제활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먼저 대출고객의 다양한 금융 불편 사항을 해소해 시장의 자금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힘 쏟고 있다. 차주의 금리 부담을 다소나마 덜기 위해 리스크 측정기준을 완화하고, 대출의 제한요인 중 자체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찾아 적용한다는 의미다.

일례로 대출금리는 원가에 일정한 마진을 보태 결정되는데, 이 원가는 대출에 쓰일 자금의 '조달원가'와 업무 담당자들의 인건비를 주로 하는 '업무원가' 그리고 차주 부도로 원리금 회수가 불가능할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위험원가'를 바탕으로 산정된다. 이 중 리스크관리 능력이 뛰어난 은행일수록 위험원가를 줄여 보다 저렴한 금리에 대출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박 부행장은 "우리은행은 최근 허위 매출채권으로 대규모 은행 손실을 끼친 KT ENS, 모뉴엘 대출에 전혀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리스크관리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며 "이러한 리스크관리 역량 덕분에 위험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또 리스크 차등화 수준을 대폭 세분화해 우수고객은 금리 혜택을 더욱 크게 볼 수 있게 바꿨다. 예를 들어 부동산의 경매 낙찰률을 지역별, 담보유형별로 세분화하고 특히 산업단지 등 특수 지역에 대해서는 더욱 분류를 세밀하게 했다. 해당지역의 금리는 낮추고 한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먼저 발굴, 리스크관리를 통해서도 고객에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셈이다.